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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자신과의 타협 (영화 '그렘린'의 대사에서)

by Laurier 2020. 6. 21.

1984년도 영화 '그렘린'이란 영화를 아십니까? 어린 시절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의 악몽과도 같은 영화였지만 괴물로 변하기 전 작고 귀여운 '모과이'라는 동물때문에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에서 물을 맞은 '모과이'는 자기 복제를 시작하고 그 복제된 '모과이'들이 자정이 넘어 음식을 먹으면서 괴물인 '그렘린'으로 변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복제물이 악마가 된다는 이야기. 정말 그때는 그저 그냥 스펙타클한(지금으로 따지면 정말 형편없는 CG였지만) 영상과 귀여운 모과이가 괴물이 되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내용들만 기억하고 보고나와서 '정말 재미있었다' 라는 정도의 감상평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몇 달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는데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였네요.

'모과이'를 키우는 어느 중국 상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사업가가 그 지역 주민에게 보상을 해 줄테니 상점이나 집을 비우라는 독촉을 하는데, 이 곳 중국인 상인에게도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절대로 못 나간다고 버티고 있자, 업체 직원들이 왜 그렇게 생각이 없냐, 이 보다 훨씬 나은 보상이 있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때 중국인 상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타인과의 타협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자신과 타협하기란 더 어려운 법이죠.

이 구절이 어른이 되어서 다가오는 바가 크네요. 자신과의 타협. 어떤 의미에서의 타협이건 무엇을 위한 타협이건 타협은 쉬운 것이 아니죠. 타인과의 타협이라면 서로간의 이익을 위한 것일텐데 자신과의 타협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니 더더욱 힘들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게을러지려 할 때 게을러지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타협을 이끌어서 좀 더 나은 나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굉장히 어렵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신과의 타협을 이끌어 낸 사람들에게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항상 게을러지고 싶고,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원하면서도 그보다 못한 행동을 하려 하니 말입니다. 그런 나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좋은 제안을 나에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매일이 이런 자신과의 타협의 과정인데, 오늘은 어떤 타협으로 나 자신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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