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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후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by Laurier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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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교보문고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구었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의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펴낸 첫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지난 10여 년간 일상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영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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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18년 11월 30일에 첫 발행된 책이다. 작년 8월 쯤 어느 SNS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보았다. 한 명의 독자가 이 책이 너무 좋다는 글을 올리고 그 글을 본 다른 사람이 또 이 책을 읽고 올린 글을 보았다. 자신도 이 책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던 책. 그러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도서관조차 가기 힘들어지던 때 전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다. 얼른 대출 신청을 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 자체가 무언가 죽음에 관한 엄청난 것을 쏟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달리, 이 책은 김영민 교수가 자신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은 내용들이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럽고, ‘죽음’에 관한 내용은 앞에 조금 있었을 뿐이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책은 끝까지 읽어야지 하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읽기 시작하던 어느 날. 책이 뭔가 수상하다. 많이 수상하다. 아니 수상하다기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넘쳐나는데 이 교수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쓴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교양 넘치는 언어들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렵지가 않다. 그렇지만 생각할 거리를 엄청 던져주고 있다. 처음에는 뭐 이리 고상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을까? 굳이 이렇게 써야할까란 생각도 들었는데 어차피 이 분이 하고 있는 공부가 그런 분야이고 연구에 몰두하시는 분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 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이 책이 도대체 뭐하는 책인가 싶어 교보문고에서 자료를 하나 찾았다.

정말 위 내용이 말해주는 그대로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들. 이 책을 통해 불안하던 삶이 견고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견고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들은 차례에 있듯이 굉장히 방대한 내용들이다.

그 중에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칼럼이 신문에 게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로인해 팬덤까지 생겼다고 한단다. 이 글을 쓸 때가 한참 추석 때였고 추석에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정말 행복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묻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묻는 것을 보고 그런 물음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으로 되묻기 방법을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친척이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되물으라는 것이다.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무슨 이런 또라이 같은 게 다 있나 하겠지만 다른 말을 하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웠다. 정말 굉장히 흥미로운 발상이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대로 했다가는 진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에서 찾은 흥미로운 것은 다음 페이지였다. 사람들은 새해에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권투 선수 마크 타이슨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 페이지를 남긴다.


우리가 진짜 불행한 것은 내가 세운 거창한 계획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정말 소소한 생각들로 가득한 내 행복한 삶을 우리는 왜 외면하고 살고 있을까. 김 교수님은 정말 디저트를 좋아하는 가 보다. 책 후기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p. 330
‘나는 만화도 무척 좋아한다. 이런 걸 다 하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보통의 내 또래 한국 남자가 하는 많은 일을 하지 않아서 가능하다. 나는 동창회에 안 나가고 경조사에도 잘 안 다닌다. 몰려다니면서 술 퍼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 대신 디저트를 먹는 편이다. 나랑 뜻이 맞는 동료들이 있어 ‘sweet solidarity’라는 점조직을 만들었다. ‘달콤한 연대’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니면서 먹는 모임이다.’
- 멤버가 몇 명인가.
‘점조직이라 밝힐 수 없다. 내 또래 남자를 만났을 때 디저트를 먹자고 하면 보통은 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호응해주는 이가 있고 그런 분들이랑 다닌다. 미술관 가는 것도 좋아한다. 한국 남자들은 미술관에도 잘 안 가서, 가보면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아주 소소한 것. 그것이 주는 행복. 정말 좋지 않은가 말이다.

한편, 성장과 예술이 주는 교훈에서 김 교수님은 상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태어난 이상 성장하고 상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생. 상처가 두려워 용기 없이 망설이다 끝내는 인생은 정말 허망하지 않은가. 태어난 이상, 내 앞에 주어진 캔버스에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내가 그린 것이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상처도 언젠가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참 와 닿는다.

또한 흥미로운 글은 ‘설거지 문명론’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귀찮아하는 것이 설거지이다. 하지만 김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설거지를 미루게 되면 ‘적폐’가 되는 것이다. 인생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설거지를 자신이 잘 치우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어차피 설거지는 해야 되는 것인데 남이 해 주기를 바랄 수 없고, 남이 한다고 해서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을 설거지 하지 않으면 타성, 나쁜 습관, 부질없는 권력욕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니 항상 부지런히 스스로의 설거지에 게으르지 말고 자신을 가꾸라는 말이지 않을까?

또한 하데스와 시시포스에 관한 글도 참 많이 와 닿았다.

시시포스의 상징은 단순함이다. 끊임없이 다시 떨어질 것을 알지만 바위를 다시 위로 올려야하는. 그런데 그것이 단순함 만이 아니라, 단순한 노고, 단순한 덧없음, 단순한 끝없음이라니.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인생이라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사라지면 우리의 인생은 조금이나마 나아진다고 한다. 김 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정치에 빗대어 표현하셨지만 나는 그냥 단순하게 인생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다. 우리 인생은 정말 이 세 가지가 다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이 셋 중에 하나라도 끊어내려면 어떤 것을 해야 할까? 바로 위에서 말한 자기 자신의 설거지를 부지런히 하면 될까? 정말 이 부분에서 어찌나 생각할 것이 많던지...

글을 계속 읽어가는 중에 영화 ‘안토니오스 라인’에 대한 칼럼이 나온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을 하는데 그 중 이런 부분이 나온다.

‘변하는 것은 없고 달라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을 바꾸려, 세상을 바꾸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진정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느끼는 순간이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달라진다는 것.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 어느 광고 문구가 생각났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적어도 이렇게 하고 있는 나는 달라지고 있지.’

김 교수님이 말씀하고 싶었던 것이 이런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 문장이 이렇게 다가왔다. 세상이 변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는 것. 무의미한 무한 반복을 하고 있지만 그 무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이런 이야기도 써준다.

죽음과 생이 함께 하는 공간. ‘어떤 것도 끝은 없다.’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장.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마지막 문장처럼 인간은 어떠한 모습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것. ‘어떤 것도 끝은 없다’라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않은가란 생각이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의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책을 한 번 읽고 끝내기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기에 이 책은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김 교수님에 대해 알아보다 영화 ‘박화영’에 대한 칼럼 내용과 김 교수님 블로그가 있어 같이 올려본다.

‘신동아’의 정치학자 김영민 교수가 본 영화 ‘박화영’에 대한 칼럼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525418/1

김영민 홈페이지
http://polisci.snu.ac.kr/kimym/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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