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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차갑게 보이지만 차가운 것이 아닌

by Laurier 2020. 7. 4.

어제는 밤에 오는 데 생각지도 않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한 때 우산 없이 다니다가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다닌 탓에 그 이후로는 비가 오던 오지 않던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항상 작은 우산을 챙겨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어제도 다행히 비를 맞지는 않았지요.

그렇게 버스를 타서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자리가 나서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었기에 다른 생각 없이 멍하게 비내리는 창을 바라보고 한참을 가고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 뒤에 어느 여학생 둘이 탔던 것 같고 뒤에서 재잘재잘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기사님께서 '어이, 거기 파란색 옷 입은 학생, 이리 와봐!' 하시는 겁니다. 학생은, '저요?'라고 잔뜩 겁먹은 먹소리였고요.

기사님의 목소리가 조금은 화가 난 듯하기도하고 뭔가 학생에게 지적할 사항이 있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도 잔뜩 긴장해서, 요즘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서도 조심조심 얘기해야 하는데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뭐라 하시려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있었죠.

학생이 기사님께 다가왔는데, 그때 기사님께서 자신의 왼쪽에 있던 비닐 우산을 꺼내서 건네주시는 겁니다. 아마도 학생이 우산 없이 탔던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가봐요. 학생은 당황하면서도 웃으면서 '친구가 바라다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어요.

기사님은 그 우산을 다시 옆에 놓고 운전을 하셨는데 기사님이 우산을 놓은 그 자리에는 여러 개의 우산이 있었어요. 아마도 승객 중에 누군가가 놓고 간 우산일테고, 아무도 안 찾아가니 손님 중에 간혹 우산없이 타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주시려고 챙겨놓으셨던 것 같아요.

기사님의 말투는 차갑게 들렸지만, 그 마음은 너무나도 따뜻했던거예요. 그 순간, 우리는 아니 모두는 아니더라도, 나는 얼마나 사람을 오해하고 있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님을 어제 기사님을 통해 다시 또 배우게 되었어요. 나의 기준에서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 다음에 평가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섣부른 시나리오는 쓰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같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한 분 왔는데 저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다른 분들은 그 분의 화장한 모습과 외모에서 그 직종에 맞지 않다고 미리 판단해 버린 것 같더라고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인수인계하면서 얘기해 보니 굉장히 예의 바르고 똑부러지는 성격이라 괜찮다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은 말 한 마디 해 보지도 않고 그 사람에 대해서 이미 평가가 끝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씁쓸해지더라고요.

어쩌면 첫 인상이 끝인상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첫 인상이라는 것이 내 주관은 아닐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의 신입과 버스 기사님의 일화가 겹치면서 또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게 되네요.

하지만 여태 겪어 본 바로는 첫 인상에 속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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