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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후기

삶의 쉼표가 되는 옛 그림 한 수저 - 탁현규

by Laurier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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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가 되는, 옛 그림 한 수저 - 교보문고

‘제2의 유홍준’이라 불리며 기획하는 전시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매 강연마다 청중들의 배꼽을 빼는 고미술계의 ‘스타’가 있다. 탁현규 전 간송미술관 연구원이다. 그의 옛 그림 설명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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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의 3대 화가라고 불리우는 신윤복, 김득신, 정선의 그림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신윤복 정선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김득신이라는 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으며 그분의 그림에 빠지게 되었다.

서양의 그림은 색채가 화려하고 정말 한 눈에 시선을 끄는 반면 한국화는 뭔가 밋밋하고 그냥 스~윽 지나치게 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에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정말 서양화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화는 화려한 색채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화려한 기교보다 그 색 하나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화는 단지 붓과 먹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가끔 색이라고 해야 3색 빨강, 노랑, 파랑이 주를 이루고 조금 더 나아가면 옥색 정도가 다이건만 그 붓 터치가 어찌나 화려한지 감탄할 지경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보고 있으면 어쩜 이리도 정교할 수 있을까 싶게 잘 그린 그림들. 그 당시 사진도 없던 한국에서 사람을 또는 배경을, 그리고 풍경을 붓 하나만으로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천재라는 명칭이 붙기에 무엇이 부족할까.

우선 익히 알고 있는 신윤복 화가. 정말 섬세하게 남녀의 모습을, 여인의 모습을 잘 그린 화가이다. 간혹 현실감이 조금은 부족하여 발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림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그려낸다는 것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미인도'는 저자가 말해주듯이 서양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미인도'가 있다라고 할 만큼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참 여러 생각이 든다. 편안한듯 하면서도 무언가 말하려 하는 것 같은 눈빛. 말하지 않음에도 상대는 내 마음을 다 알아 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빛. 그럼에도 피곤한 듯하고 또 뭔가 모를 슬픔을 담은 듯한 눈빛. 이 그림을 어떤 의도로, 어느 상황에서 그린 것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지만 그 자체가 보여주는 단순하면서도 안으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래서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저 머릿결 하나하나의 섬세한 붓터치. 저 아름답고 고운 여인의 모습. 진짜 천재 화가가 맞다. 또한 유전이기도 하다. 신윤복 아버지 신한평은 영조, 정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였다고 한다. 그 아버지의 그 피를 물려 받은 신윤복의 그림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두 번째 화가는 김득신이라는 분이다. 김득신이란 분에 대해 찾아보니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분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것도 같지만 독자적인 기술이 보인다. 멋대로 그린 것 같으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림, 정말 사진을 보는 것처럼 또는 동영상을 보는 것과 같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마치 그 곳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가 썼듯이 김득신의 그림은 이 시대에도 살아남을 그림인 듯 한다. 아래 그림에서 고양이가 병아리를 잡아가는 장면이 어찌나 생동감 넘치는지.

저자는 아무리 카메라가 발달되어 있고 사진이 발달되어 있어도 이렇게 정확하게 장면을 포착할 수는 없다고 쓰고 있다. 저 날아가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모습, 어찌할바 몰라하는 놀란 여인이 금방이라도 '에그머니나, 이를 워째, 워쯕헐까..., 저놈의 괭이가 미쳤나부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과 놀란 어미닭의 모습, 너무 놀라 허둥지둥 도망가면서 쓰러지는 것 같은 병아리들의 모습이 완전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을 단지 붓 하나와 먹으로만 완성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김득신이라는 분 정말 대단하신 분이란 생각이다.

마지막 화가, 너무나도 유명한 겸재 정선. 풍경화가로 유명한 화가. 그의 그림은 주로 강, 호수, 산 등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이다. 사진으로 찍어도 그렇게 정확하게 찍을 수가 있을까 싶게 너무 멋진 그림을 그리신 분. 특히 멀리서 산과 강을 배경으로 작은 사람들까지 그린 모습이며 산새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그린 그림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게 했을지 안 봐도 훤하단 생각이 든다.

오늘날이야 워낙 사진이다 동영상이다 해서 완벽하게 구사를 하지만 그 당시를 생각한다면 정말 그런 멋진 풍경을 한 폭의 화폭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천재가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일부러 그 모든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섬세한 붓놀림으로 그렸을 것을 상상하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 풍경을 그리기 위해 높은 산보다 더 놓은 곳에 올라 그 그림을 담았을 것이 아닌가. 그것을 그리기 위해 그 많은 도구들을 짊어지고 산을 올라 그 그림을 그렸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면, 얼마나 그 풍경을 남기고 싶었으면 그리 할 수 있었을까.

겸재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금강전도' 정말 절경이 끝내준다. 이것을 붓 하나로, 그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화려한 색채 없이도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명암만으로 멀고 가까움을 표한한 작품. 저렇게 깍아지른듯한 암석들을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 내가 그곳에 가서 보지 않았어도 그 절경이 너무 멋있어서 그림을 보고 나면 한번은 꼭 이 장소에 가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러한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이것을 꼭 가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이 멋진 그림을 꼭 품에 안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 위에 시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글은 겸재가 쓴 글이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가 나중에 쓴 글이라고 하는데 아직 누가 이 글을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글에서 나타났듯이, '~베개 맡에서 실컷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했듯이 실제 가지 못한다면 그것을 그린 그림을 두고두고 보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글이다. 이 시대에 진정 이 그림 하나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싶게 너무 완벽한 그림이라 생각한다.

서양의 그림들에 밀려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 옛 그림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섬세함을 보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너무 적은 설명과 일방적인 저자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설명이어서 그랬지만 옛 화가들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보게되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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