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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후기

박경리의 말 - 김연숙

by Laurier 2020.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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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말 - 교보문고

2018년 『토지』 읽기의 진수를 선보여 독자들 사이에서 은근한 입소문이 퍼진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의 저자 김연숙(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이 새로운 인문 에세이 『박경리의 말』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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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말’은 박경리 작가의 대작 ‘토지’ 속에 나오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토지 속의 주옥같은 문장들과 작가의 경험과 또 다른 책들의 내용들이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불의에 맞서고 싶어지게도 하고 ‘희망’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토지를 읽지 못했다. 이 책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토지를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는 하나 토지를 완주한다는 것이 자꾸만 버겁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대장정 소설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은 읽어보았지만 아직까지 박경리님의 토지는 읽어보지를 못하였다. 책 한 권 읽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사람으로서 20권이나 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에 한 권씩 다른 책들과 교차해서 읽는다면 1년 안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금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과, e-book으로 담아놓은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서서히 시도를 해 보아야겠단 생각이다.

일단 이 책을 내신 작가님에 대해 알아보자.

김연숙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교양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고전 읽기: 박경리 『토지』 읽기’를 2012년부터 현재까지 강의해오고 있다. 매 학기 50여 명의 학생과 함께 『토지』를 읽으며 삶과 세상, 타인과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의 별을 찾아나가는 경험을 하도록 이끌었다. 강의 평점 최고점을 기록하고 800여 명 학생으로부터 최고 교양 강의로 손꼽힐 만큼 따스한 울림을 주었다.
또한 학교를 넘어 다양한 인문학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소통하면서,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던 우리의 고전 『토지』야말로 자기 삶을 긍정하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토지』 속 600여 명의 인물을 둘러싼 억압과 굴레, 경제적 궁핍과 역사적 사건, 사랑과 집착과 연민 등을 새로이 해석하며,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조차 결코 도망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한국토지학회 정회원, 한국대중서사학회 부회장, (사)한국여성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쓴 책으로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그녀들의 이야기, 신-여성』, 함께 쓴 책으로 『여성의 몸-시각·쟁점·역사』,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고전 톡톡』, 『인물 톡톡』, 『젠더와 번역』, 『신여성-매체로 본 근대여성풍속사』 외 다수가 있다.

김연숙님은 책 날개에 이렇게 쓰셨다.

‘박경리 선생이 전해주는 인간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 지금 여기의 삶을 길어 올리고자 합니다.’

박경리님이 장작 600여 명의 인물로 글을 쓰신 것도 대단하시고, 김연숙님이 그런 작가님을 기리기 위해 그 분의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쓰신 것도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날개에 실려 있듯이 8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최고 교양 강의로 손꼽힐 만한 이유를 이 책을 읽어 보면 알 수가 있다.

책의 구성은 우선 『토지』 속 대사가 먼저 나오고 그 대사와 관련한 작가님의 경험담, 또는 그 대사와 어울릴만한 다른 책의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들이 어찌나 많던지. 아래 부분에 그런 책들에 대해 짧은 목록을 하나 쓰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을 김연숙님이 글 속에 소개한 책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사회평론, 2005.
• 문유석, [쾌락독서], 문학동네, 2018
•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7
•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청미래, 2009
• 마르셀 에메, [속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문학동네, 2002
•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두레, 2006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4
•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inghog Day)], 1993
• 2004년 9월 마산 MBC 특집 프로그램 대담.
• 김수안,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주) 스리체어스, 2017
• 박경리, [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유고 시집>, 마로니에북스, 2008
•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걸음, 2014
• 박경리,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박경리의 원주통신], 나남, 1994
•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이렇게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책들이 박경리님의 『토지』 속의 문장 속에 적절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나도 그런데... 모두가 같은 삶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모자랐던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도 된다.

우선 이런 글이 있다.

‘그러고 보니 노화란, 나이 들어 세상과 다시 관계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 듦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것은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멀리 바라보라는 그런 도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싶습니다. 물론 그 이치가 노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자기 범주를 넘어서 자기 시야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노안을 겪게 된 작가님은 자신의 노안에 대해 화가 났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위와 같은 글을 쓰셨다. 우리는 나이들어감에 따라 신체 변화를 가장 많이 느끼면서 우울해지고 화가 난다. 하지만 김연숙님 말씀처럼 노화라는 것이 내 신체의 퇴화를 넘어서서 세상과 다시 관계를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으로 우리 인생은 조금 더 편해지고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와 함께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소개해주면서 러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러셀은 어린 시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유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다섯 살 즈음에 인생을 지루하게 여기는 조숙한 아이였고, 사춘기 무렵인 열네 살 때부터는 그 따분한 인생을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자살할 생각만 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예순 살 즈음에 이르러 삶을 즐기고, 앞으로의 삶도 점점 즐거워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하여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복예찬론자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겠지만 김연숙님의 생각과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삶이 그렇게 행복하고 살아갈만하다는 것을 느끼기보다 방황하고 힘들어한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 같고, 그래서 나의 경험에 비추어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평균 수명이 100세에 가까운 지금 아직 절반 밖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점점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세상을 멀리 봐야 한다는 말은 다음 문장에서도 나온다.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건, 눈앞만 바라보지 않는, 자기 집착을 벗어난, 멀리 보는 자의 조망입니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에 집착하고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박경리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주옥같은 문장들이 박경리님의 『토지』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토지』를 읽고 나면 삶이 바뀌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김연숙님과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한참을 애잔함과 감동과 모성애로 따뜻하기도 했다. 김연숙님 어머님께서 평소에 크로아티아를 그렇게 여행하고 싶어하셨단다. 그런데 여행하기 전에 다리 수술을 받으셔서 잘 걷지는 못하셨단다. 단체관광을 선택하여 여행을 갔으나 어머니가 제대로 걸으시지 못하여 단체에서 낙오되어 호텔 근처에서 우두커니 지나가는 사람들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그렇게 웃으시면서 즐거워하시더란다. 이유는

‘크로아티아 여행은 엄마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알게 된 것은 그 밑바닥에 놓인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엄마가 원했던 것은 크로아티아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특산품 쇼핑도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진짜 소망은 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여행도 좋아하셨지만 그렇게 늘 바빴던 딸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셨던 거다. 이 대목에서 나의 엄마 생각이 났다. 나의 엄마도 그렇게 딸이 보고 싶어 하루가 멀다고 전화하시고, 언제 오냐 라고 하시면서도 딸이 부담가질까 괜찮다고만 하신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찾아가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 계신다. 이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자식이 툴툴거리고 있어도 멀리 떨어져 못 보는 자식을 간만에 잠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신가보다. 이 부분에서 한참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 모시고 그렇게 여행을 가봐야겠다. 가슴이 짠하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나보다 못난 사람들에게 던지는 시선이 있다. 왜 저러고 살아갈까? 참 못났다. 또는 타인이 나의 그런 비루함을 보고 느끼는 것에 대해 힘들어할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런 것에 대해 작가는 박경리님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빌어 이야기를 들러주고 있다.

‘늙고 못생겼으며 난쟁이같이 볼품없는 체구 그 어디에선가 풍겨나는 당당함.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 18권 368쪽

이 부분은 ‘막딸이’라는 늙고 못생긴 아낙의 사연이다. 막딸이는 말 그대로 어릴 때부터 머리가 크고 목이 바싹 다가붙어 있어 ‘난쟁이’라 놀림받으며 자랐고 남편의 구박과 천대를 받았고 결국 남편은 막딸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다가 기생첩까지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다. 그런데도 막딸이는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고 감내한다. 이 부분에서 김연숙님은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책의 내용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막딸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단한 쾌거도, 놀라운 사건도 없이, 과시하는 바도 없이 ‘모름지기 삶이란 이렇게 지고 살아가야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러하니 그녀에게는 눈부시게 화려한 겉모습과는 상관없는, 삶의 당당함이 아로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이 문장 하나로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내 안에서 정리하고 지고 가야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삶이란 이렇게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 인생을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진리일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희망’에 관한 문장이 나온다. 박경리님의 『토지』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이기에 희망, 좌절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 중에 희망에 대한 다음 구절이 나온다.

‘무슨 일이 될 거라 그런 생각 해본 일이 없고, 또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일이 없소이다.’

이야기 속에 ‘수관’이라는 사람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제 목소리를 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를 외친,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낸 청년의 모습이란다. 자유롭게 살아가던 수관이란 사람이 독립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희망에 대해 물었을 때 위와 같은 말을 하였단다.

이에 덧붙여 작가 김연숙님은 리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Hope in the Dark)』라는 책 속에 나오는 ‘희망’에 대해 썼다.

‘희망은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아니며 그 둘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그 때문에 희망은 늘 위태롭다 합니다. 그녀는 우리는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전망을 가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라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행동해야 하며, 바로 그것이 희망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추(진자)의 운동’을 거론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에 있는 높이 매달린 추는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왕복운동을 한다 합니다. 그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그러나 추는 매번 새로운 지점을 지나가고 있다는군요. 이것이야말로 고단한 반복 속에서 역사를 밀고 나가는 희망의 모습, 우리가 역사를 옮겨가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새로운 꿈으로서 희망을 ‘상상’하기에 앞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을 따라 해봅니다.’
‘무슨 일이 될 거라 그런 생각 해본 일이 없고, 또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일이 없소이다.’

‘희망’은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말. 정말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말이 아닌가란 생각이다. 거창할 것도 없고, 그래서 수관이 하는 말처럼 ‘무슨 일이 될 거라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그런 삶의 자세로 희망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심어주는 문장이다.

박경리님의 『토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것은 ‘희망’이지 않을까란 생각이고, 우리 평범한 일반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란 생각을 김연숙님의 『박경리의 말』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목표 하나가 생겼다. 『토지』를 완독하고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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