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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후기

숨을 참던 나날 - 리디아 유크나비치(Lidia Yuknavitch)

by Laurier 20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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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던 나날

생을 혐오할 조건을 타고났으나 끝내 자신의 힘으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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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든 생각.
'와우와우~ 이런 센 언니좀 보소!'

한국에서라면 절대 아무도 이런식의 책은 낼 수 없을거라고 감히 장담한다.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으로 낙인(?) 찍히면서 양쪽으로 갈라놓는 어이 없는 상황속에서 어느 한국 여성이 이런 류의 글을 낸다면 분명 마녀사냥감이다.

고통을 최극단의 고통으로 받아친 사람. 인간이 이러고도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싶은 행위들.

그 극단에서 만난 창작이라는 글쓰기로 인해 구원(?)을 받은 사람.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쓴다해도 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는 모자랄 것 같다.

삶이 고통스럽고, 내 인생을 바로잡고 싶어서 갖은 기도와 참선을 해도 그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단, 15세 이상 관람가에 '보호자의 시청 지도가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붙듯이 이 책 역시 그 어떤 연령대가 읽어도 '지도가 필요한 책'이란 사실은 인지하고 읽기를...

여성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아래 적힌 이 아름다운 문장만 보고 글을 읽었다간 적잖이 충격일 수 있다. 책 대부분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p. 18
기어이 사람들은 아이를 데려가 버렸고, 그때 마지막으로 나는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생각을 했다. 그래, 이게 죽음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죽음의 삶을 선택하겠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p. 128
파시스트 천주교도인 고모가 했던 말은 이것이다. '제일 슬픈 사실은 아기가 지옥에 간다는 거야, 그렇지 않니. 아기가 세례를 못 받았잖아.'

p. 203
나는 죽으려고 그랬던 걸까. 그래서 깊은 물속에서 노를 놓아버린 걸까. 그래서 어렸을 때 자전거 손잡이를 놓아버린 걸까. 그래서 운전대를 놓아버린 걸까. 전부 내가 대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 아니다.

p. 205
밤의 물속에서는 사람이면 느껴야 하는 것들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평화가 있다. 급류가 끝나는 곳에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지점이 있다.
물속에 들어갈 때는, 책에 빠져들 때처럼, 삶을 땅에 버려두어도 된다.

p. 253
내 첫 번째 책은 억압받은 자들이 해방되듯, 혈전이 풀어지듯 내 몸에서 흘러나온 문장으로 탄생했다. ~~
손과 팔과 얼굴이 아팠지만(기차에서 떨어져 생긴 멍과 상처 때문에, 혹은 결혼 생활 때문에, 혹은 밤의 자아 때문에) 나는 이야기를 쓰고 또 썼다. 안팎이 뒤바뀌지는 않았다. 언어가 있고 내 몸이 있었다. 나는 내 살갗을 뚫고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몸속에 있는 것들을 써냈다. 그것이 책이 될 때까지.
내 살갗이 괴성의 노래를 만들어 낼 때까지.

p. 255
내 안에 있던 두 명의 나? 우리는 친해지기 시작했다. 지적인 나, 그리고 몸에 피 칠갑을 한 나는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p. 268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주변부로 가야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틀을 대체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 원래의 뿌리를 지우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새로운 뿌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 나 역시 이곳에 있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

p. 272
내 인생이란 바다가 물길을 열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상처에서 고통 외에 다른 것도 탄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 381
참 사소하지만 애틋한 것이다, 사랑의 단순함이란.
나는 육지에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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