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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후기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 윤신영

by Laurier 2019.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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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또 다른 동물들에게 남기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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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과 문학, 철학이 적절히 아름다움을 뽐내며 만난 책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문학적인 아름다운 필체와 철학적인 사고로 보여주고 있어서 저자인 윤신영이란 분이 참으로 대단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각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또 다른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 아름답고 진정성 있는 편지를 쓰면서 그 멸종 위기의 동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더 이해가 잘 된다. 사람이 박쥐에게, 편지를 받은 박쥐가 꿀벌에게... 이런 식으로 행운의 편지처럼 편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동물의 멸종위기를 문명사와 연관짓고 인문학, 철학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재미나게 꾸며나가고 있다.

• 시작은 인간이 박쥐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박쥐의 종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왜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지금은 왜 볼 수 없는지 왜 멸종이 되었는지 등에 대해 사랑하는 연인에게 쓰듯이 편지를 써내려간다.

• 풍력에너지가 인간에게 대체에너지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반면 박쥐에게는 그 풍력의 압력으로 인해 그 근처에 가면 장기가 파열되어 죽기도 한다고 한다. 온도에 민감한 박쥐에게 기후변화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p. 28
붉은박쥐를 동면에 이르게 하는 온도는 약 13°C였어요. 이보다 최저기온이 낮아지면 동면을 시작하고 이보다 높아지면 깨어나는 식인데, 그게 정확히 10월과 5월 중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박쥐는 외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정교하게 겨울잠 전략을 세우는, 대단히 똑똑한 동물이었던 거예요.

p. 31
큰박쥐아목 박쥐는 모두 과일이나 꿀, 꽃가루를 먹고 사는 초식입니다. 작은박쥐아목이 육식성이고요. 물론 작은박쥐아목에 속하는 당신의 거의 대부분은 곤충을 먹을 뿐 피를 먹지 않아요. 흡혈박쥐는 오직 남미에만 사는 극히 일부의 박쥐(세 종)뿐이며, 그나마 사람이 아닌 가축의 피를 먹습니다.

p. 49
마찬가지로 생물의 세계에서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기후 변화를 느끼는 '약자'에 해당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박쥐, 당신은 그 중 하나입니다. 물론 평소 동굴에 숨어 있거나 야밤에 돌아다녔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고, 그래서 존재를 잘 몰랐기에 혹은 관심이 없었기에,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급작스러운 등장이 더 충격적이었을 뿐이지요.

• 인간이 자신들을 오해해서 속상하지만 자신들의 멸종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와 함께 박쥐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꿀벌에게 편지를 쓴다.

• 한국의 동양꿀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애벌레를 갖다 버려야하는 상황을 슬프고 처절하게도 박쥐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해서 써내려간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밑도끝도없이 벌들이 죽는 것도 아니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 한국에서는 양봉이 밀집해서 있는데 그것에 비해 식물이 많지 않아 양봉꾼들이 해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기면서 벌통을 이사한다고 한다. 그로 인한 꿀벌들의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 꿀벌의 근면성실함과 평등한 삶에 대해 칭찬하면서 인간들이 과연 꿀벌만큼 욕심없이 공평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p. 52
안녕하세요 꿀벌 씨. 박쥐입니다. 당신과는 일터에서 종종 마주쳤어요. 기억하시나요. 노랗고 까만 줄무늬가 예쁜 귀여운 옷과는 어울리지 않게, 당신은 성격만은 몹시 사나웠지요. 그 서슬이 무서워 제가 통 말을 걸지 못했네요. 곁에서 눈인사만 하다가, 이렇게 뒤늦게 조심스러운 편지를 씁니다.

p. 67
세상에 나비를 가축으로 키우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가축으로 키웁니다. 초개체기 때문에, 한 군집이 한 마리의 동물과도 비슷해서 키우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p. 79
꿀벌 당신만 해도, 열심히 모은 꿀을 육각형의 기하학적 밀랍 구조물인 벌집 속에 채곡채곡 쌓아놓습니다. 애벌레들은 똑같은 크기의 벌집 안에 한 마리씩 들어가 일벌들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자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애벌레가 다시 일벌이 돼 다음 세대를 키웁니다. 벌집 열 개를 한꺼번에 차지하는 애벌레도 없고, 살 권리를 박탈당한 애벌레도 없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벌집 안에서 모든 꿀벌이 공평하고 심지어 '민주적인(토마스 실리, 《꿀벌의 민주주의》)' 세상을 건설합니다. 그런데 인류가 과연 당신 꿀벌에게서 이런 점을 배울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p. 81
저는 사람들이 꿀벌 씨의 사회 같은 역동성과 민주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꿀을 얻을 수 있고 더 행복해지리라는 희망이 순진한 믿음이 아닌 세상이요. 모두가 제 몫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이요.

• 이렇듯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래는 물가에 살던 호랑이가 왜 산 속으로 쫓겨났는지, 다양한 종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한 종인 까치인데 한국에선 환경부에 의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 고래가 돼지와 먼 친척 관계였다는 얘기 등 많은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저자의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에게 편지를 쓰면서 끝난다. 그러면서 현생 인류에게 네안데르탈인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이미 사라진 모든 인류를 대신해 하나만 당부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논리를 자연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말아주세요. 이미 당신의 개체수는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동물이 이 정도 수준으로 번성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이상증식', '창궐'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구제에 나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은 당신에게 그렇게 하지 않죠. 오히려 당신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채 조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p. 86
호랑이 네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 너는 아무르호랑이. 흔히 시베리아호랑이라고 부르는 호랑이 아종이지. 호랑이 아종은 원래 9종이 남아 있었는데, 이 가운데 3종이 20세기에 멸종하고 지금은 6종만 남아 있지. 아무르호랑이는 이 가운데 한 종이야.

p. 118-119
아무튼 이 연구로 저는 조류 중에서 사람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세 번째 새로 인정 받았습니다. 속설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하는데, 동네 사람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낯선 사람이 오니 우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p. 192
사실 사람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이 보기에는, 사람이야말로 위해동물일지 몰라요. 온갖 환경을 점령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바꾸며, 심지어 다른 동식물을 몰아내기도 서슴치 않지요.

p. 229
생명은 마치 제 친구 물닭이 잠수를 하다 잔잔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그저 때때로 떠오르고 때때로 가라앉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 258
그러고 보면, 기린은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모범적인 동물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 늘 스트레스 반응을 경험하며 삽니다. 소설가 박민규 씨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작품도 그런 의미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p. 314
2012년, 당신은 공식적으로 인구 70억을 넘겼습니다. 50억 인구를 넘은 지 불과 24년만이었습니다. 지구상에 당신과 필적할 인구수를 자랑하는 대형포유류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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