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은 책 후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by Laurier 2020. 1. 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0090018&orderClick=LEa&Kc=#N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에서 이제는 소설을 쓰는 작가...

www.kyobobook.co.kr

화학과 출신답게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들이 매력적이다. 단순한 과학적 소설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에 대한 철학까지 담고 있는 이 소설을 왜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하는지 알 것 같다.

이야기는 총 7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었을 때가 가장 가슴 저렸다. 언제나 떠오르는 말인 '그럼에도'가 다시 떠올랐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한강님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해설을 해주신 조연정님이 한강 시인의 시를 두고 한 문장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애초에 그림과 말은 분절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을 그 기원으로 공유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공생 가설'은 일본 영화 '기생수'의 역 버전인듯 하단 생각이 들었음과 동시에 정말 소설이 현실의 '있음직한 일'을 쓴다는 말이 딱 맞는, 정말 흥미로운 상상력이 뛰어나단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네 번째 이야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는 정말 '인간이란...'이란 굉장히 다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 '감정의 물성'은 그 자체로 가장 정확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으며, 어쩜 이리도 철학적이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경이로웠다.

여섯 번째 이야기 '관내분실'에서는 한 '사람'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여자도, 어머니도, 딸도 아닌, 한 '사람'.

마지막 이야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굳이 뭐하러' 와 '그럼에도'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너무나도 훌륭한 과학적인 상상력이 너무나도 훌륭한 철학적 사고와 잘 어우러져 진짜 21세기를 살고 있는 작가에 의한 미래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진정 세대가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선두에 선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p. 48
릴리가 나를 폐기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였다. 어떤 존재에게 살아갈 권리가 부여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p. 82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p. 181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p. 215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p. 255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p. 308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댓글